영화 어스를 보고 난 뒤 단순히 무섭다기보다 묘한 불편함이 오래 남았습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내 앞에 선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은 소름 그 자체였고 곳곳에 반복되는 11:11과 토끼의 이미지는 공포가 아니라 우리가 외면해 온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공포를 통해 울 자신을 비추는 거울처럼 다가왔습니다.
1. 나와 똑같은 존재의 공포
조던 필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어스는 공포스러운 긴장감을 자아내는 영화가 아니라 인가의 정체성과 사회 구조를 되짚어 보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설정은 바로 '나와 똑같이 생긴 타자'의 등장입니다. 대다수의 공포 영화에서 위협의 실체는 괴물, 초자연적 존재 혹은 극악무도한 범인 같은 외부의 대상인데, 조던 필은 정반대로 인간과 똑같이 생긴 또 다른 나를 위협으로 제시합니다. 이는 호러 장르적 장치라기보다는 심리적 불안을 자극하는 효과적인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영화 속 애들레이드 가족이 겪는 공포는 생존을 위협받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닮은 존재가 나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근원적인 불안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곧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며 우리가 일상적으로 믿고 있는 '나'라는 존재가 사실은 불안정한 토대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습니다. 극 중 주인공은 어린 시절 거울 미로에서 자기와 똑같이 생긴 아이를 만난 뒤 평생을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 경험은 단순히 유년기의 충격이라기 도바는 자신 안에 숨겨진 또 다른 존재, 즉 억눌린 자아와 맞닥뜨린 사건으로 읽힙니다. 결국 영화가 보여주는 공포는 초자연적이거나 외부적 위협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깊은 의미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관객이 영화 속 복제인간들을 보며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스크린 속 낯선 얼굴을 보면서 동시에 '혹시 나도 저런 면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가'라는 불안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2. 반복되는 숫자 11:11의 상징성
영화 전반에서 가장 눈에 띄는 상징은 단연 11:11입니다. 극 초반 해변가에서 피켓을 듥 서 있던 인물이 보여주는 성경 구절 예레미야 11장 11절부터 시작해, 아들이 시계를 가리킬 때 나타나는 11시 11분까지 이 숫자는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표면적으로는 공포적으로 불길한 징조처럼 보이지만, 그 의미는 훨씬 더 깊이 있습니다. 11:11은 대칭 구조를 가진 숫자로서, 영화 속 지상과 지하, 인간과 복제 인간, 정상과 비정상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이는 복제의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결국 두 세계가 하나의 동전의 양면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징합니다. 또한 성경 예레미야 11장 11절은 "재앙이 닥치리니 그들이 도망치려 해도 피할 수 없으리라"라는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감독은 이를 통해, 사회가 외면해 온 어두운 진실과 억압받은 목소리가 결국 표면 위로 터져 나오고야 만다는 점을 암시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 숫자가 등장할 때마다 공포 연출이 아니라 관객에게 이제 곧 균형이 무너질 것이라는 불편한 예감을 심어준다는 점이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가족은 복제인간을 '외부에서 침입한 존재'라 여기지만, 11:11이라는 상징은 사실 그들이 완전히 외부가 아니라 우리와 연결된 존재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킵니다. 즉, 위협은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곧 우리 자신에게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11:11은 미장센 이상의 역할을 하며 영화 전체의 주제 의식을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3. 토끼와 지하 세계
어스의 세계관을 해석하는 데 있어 토끼와 지하 공간의 이미지는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영화 초반부터 등장하는 수많은 토끼들은 배경 장치가 아니라 중요한 은유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토끼는 실험과 복제를 떠올리게 하는 존재이며 동시에 무한한 번식력을 가진 동물로서 복제인간들의 무수한 숫자와 불가피한 증식을 상징합니다. 또한 영화 속 복제인간들이 자하에서 토끼를 먹으며 생존한다는 설정은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박탈당한 채 생존만을 강요받은 존재임을 드러냅니다. 지하 공간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지상의 인간들을 모방해야만 하는데 이는 곧 목소리와 주제성을 빼앗긴 계급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미국 사회의 이민자, 빈곤층 등 주변부에 밀려난 집단이 떠올랐습니다. 감독은 단순히 괴물 같은 복제인간으로 그리지 않고 그들이 왜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었는지를 배경에 담아내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그들을 단순히 악역으로만 바라볼 수 없게 만듭니다. 개인적으로 지하의 존재들이 인간을 모방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 무시당하는 약자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들은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없고 지상 세계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 해야만 합니다. 결국 그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순간은 공포의 발현이 아니라 억눌린 목소리가 폭발하는 순간으로 읽힙니다. 이처럼 토끼와 지하 세계는 영화 속에서 공포적 장치가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과 계급 문제를 드러내는 강력한 상징입니다.
4. 제목 <Us>가 던지는 질문
영화의 제목 <Us>는 '우리'라는 뜻을 넘어, 'U.S.' 즉 미국이라는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조던 필 감독은 전작 겟 아웃에서 노골적으로 인류 차별 문제를 다뤘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더 보편적이고 사회 구조적 문제를 탐구합니다. 영화 속 복제인간들의 봉기는 한 가족을 위협하는 사건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무시해온 목소리의 귀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감독이 던지는 질문은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가 외면하는 존재는 누구인가"라는 것입니다. 주인공과 복제인간의 관계가 뒤 바뀌는 반전은 관객에게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합니다. 즉, 우리가 괴물이라 부르던 존재가 사실은 우리와 다르지 않으며 어쩌면 진짜 괴물은 바로 우리 자신일 수 있다는 깨달음입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남는 감정은 두려움이 아니라 묘한 불편함과 성찰이었습니다. 조던 필은 공포라는 장르를 통해 오락이 아니라 사회적 성찰을 이끌어내는 감독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입증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어스를 보고 가장 강하게 느낀 점은, 영화처럼 '나와 같은 존재가 나타난다면'무서울 것이다'라는 상상에 머무르지 않고 결국 '우리가 만든 사회적 구조 속에서 괴물이 탄생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스는 무서운 동시에 불편했고 불편하면서도 계속 곱씹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공포를 빌려 사회의 거울을 들이대는 이런 접근이야말로 조던 필 감독만의 독창적인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